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4월 4일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태룡리(台龍里)에서 표충사(表忠寺) 승려들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3개월간 구금 취조를 당했다. 이후 자신의 토지 8천여 평에 달하는 자신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기부했다고 한다.
1921년 초 조카 손기욱(孫基郁)의 권유로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했다. 흥업단은 1919년 중국 펑톈성(奉天省) 푸쑹현(撫松縣)에서 윤세복(尹世復) 등이 조직한 단체였다. 항일무장투쟁과 독립군기지 건설에 목표를 두었다. 1920년 11월경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들어온 이만준(李萬俊)의 은신처를 제공했다. 1922년 5월경 경상북도경찰부(慶尙北道警察部)에 체포되었다. 1923년 1월 15일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총포화약류취체령시행규칙(銃砲火藥類取締令施行規則)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0월 16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예심면소(豫審免訴) 처분을 받고 18일에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문(豫審終結決定文)(대구지방법원:1923. 10. 16)
- 밀양의 독립운동사(강만길 외, 2003) 146, 148, 2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