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경 (頃) 서울에서 인쇄공으로 취업 중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여 서울 청년회 (靑年會) 와 노동청년회 (勞動靑年會) 에 입회 청년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동경 (東京) 으로 가서 동성사 (同聲社) 인쇄직공으로 있으면서 사회과학 연구에 몰두 1927년에는 조선청년총동맹 (朝鮮靑年總同盟) 의 중앙집행위원 (中央執行委員) 과 조선노동총동맹 (朝鮮勞動總同盟) 의 중앙집행위원 (中央執行委員) 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同年) 11월 개편된 고려공산청년회 (高麗共産靑年會) 의 조직부장으로 비밀지하운동을 벌이다 1928. 2월 제3차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2월 동안 미결수로 구금 중 옥사 (獄死) 한 사실 (事實) 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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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서울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서울청년회(서울靑年會)와 노동청년회(勞動靑年會)에 가입하면서 청년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1927년부터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중앙집행위원과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동년 11월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결성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 조직부장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28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7. 9. 9, 1929. 11. 1(號外), 1930. 3. 8, 1930. 3. 30, 1931. 4. 15)
- 朝鮮日報(1930. 3. 30)
- 中外日報(1930. 3. 30)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2) 제9권 93·99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제3권 108∼112·249∼251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167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8권 518·5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