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218
성명
한자 金萬石
이명 金先一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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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국장
1909. 2. 25 제주군(濟州郡) 중면(中面) 이도리(二徒里)에서 고승천(高承天), 이중심(李中心), 김석명(金錫命) 등과 함께 거의하여 각지에 궐기를 촉구하는 격문(檄文)을 띄우고 고승천(高承天)을 의병장에 추대한 후 대정군(大靜郡) 등지에서 300여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활동하다가 1909. 3. 2 피체(被逮)되었으며, 유치 중(留置中) 탈주(脫走)하였다가 대정 동문(大靜東門) 밖에서 피살(被殺)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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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 거의(擧義) : 의병을 일으킴
  • 피살(被殺) : 죽임을 당함.
  •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고승천(高承天) 의진에 참여하여 제주에서 활약하였다. 김만석은 1902년 2월 25일 제주 광양동(廣陽洞)에서 고승천·이중심(李中心)·김석명(金錫命)·조병생(趙丙生)·김선일(金先一)·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노상옥(盧尙玉) 등과 거의하고, 고승천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고승천 의진은 "가까운 장래에 일본인의 손에 제주 전역이 점령당하게 되니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일본인을 살해할 것"이라고 하는 격문을 비밀리에 제주 전지역에 배포하여 거의 사실을 알리고 군사를 모집하고 군수품을 수합하였다. 이 때 그는 고승천·조병생·김재돌·노상옥 등과 더불어 대정(大靜)군 영낙리(永樂里)·신평리(新坪里)·광청리(光淸里)·안성리(安城里) 등에서 의병 300여 명을 모으고, 군수품을 수합하여 의진 편성을 서둘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3월 1일 그는 동광청리 민가에서 고승천과 함께 대정주재소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월 4일 고승천과 더불어 포승을 끊고 간수와 순사를 쓰러뜨리고 탈출하다가 대정 동문밖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제주도지(제주도, 1982) 상권 384면
  • 제주도지(제주도, 1993) 제1권 1133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13집 747∼753·761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만석 김선일(金先一) 제주 -
본문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고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에서 태어났다. 단, 다른 자료에 의하면 1885년경 태어났다는 의견도 있다. 본적은 제주도 제주군 중면(中面) 이도리(二徒里) 광양동(廣陽洞)이다. 양반 출신으로 고사훈(高仕訓, 일명 高承天·高景志)한테 한학을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김선일(金先一)이다. 1908년 7월 스승 고사훈이 제주도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제주군수 윤원구로부터 전해 듣고 의병 활동을 모색하자 이에 가담하였다. 고사훈은 학맥으로 연결된 전라남도 장성의 의병장 기우만(奇宇萬)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김석윤(金錫允, 일명 金錫命·金勤受)등과 함께 제주군 중면 이도리 광양동에 대장간을 차려 무기를 제조하고 화북리 황사평에서 비밀리 군사훈련을 추진하는 동시에 자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1909년 2월 25일 고사훈의 주도로 이도리 광양동 조병생(趙丙生)의 집에서 창의(倡義)의 구체적 계획을 논의할 때 참가하였다. 김석윤·이중심(李中心)·노상옥(盧尙玉)·한영근(韓永根)·김재돌(金在乭) 등 10명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거사 일은 3월 3일, 거사 장소는 관덕정(觀德亭)으로 결정하고, 이중심과 고사훈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어 창의에 필요한 격문과 통문을 작성하여 바로 전 제주도민에게 발송하였다. 그리고 제주성 점령을 목표로 고사훈과 함께 대정군 영락리·신평리·광청리·안성리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2월 28일 약 200여 명을 광청리로 집결시켰다. 또한 김석윤과 이중심은 중면을 중심으로 의병을 규합하여 제주성 안에서 호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명월리에서 격문을 순사에게 압수당해 거사가 발각되어, 3월 1일 광청리 민가에서 대정주재소 경찰의 습격을 받고 의병장 고사훈과 함께 붙잡혔다. 지도부를 잃은 의병진은 와해되어 거사는 실패하였다. 1909년 3월 4일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대정동문(大靜東門) 밖에서 고사훈과 함께 총살당했다. 유해는 안성리 주민들에 의해 이른바 돌동산에 가매장되었다. 이후 친척이 없는 관계로 방치되다가, 1977년 제주시가 제주 의병항쟁을 기리기 위해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남쪽 기슭에 의병항쟁기념탑과 의병들의 넋을 모시는 모충사(慕忠祠)를 건립하였는데 그곳에 안장되었다. 가묘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정리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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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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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애국선열 추모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2 사당 창열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3 기념관 제주항일 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4 의병항쟁 기념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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