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17일 경북 안동 예안면(禮安面) 예안읍(禮安邑) 장터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면장인 신상면(申相冕)과 이시교(李時敎) 등의 주도로 수 천여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22일 오후 7시경, 50여 명의 시위군중은 계획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서부동(西部洞)·선성산(宣城山) 등에 모여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때 가장 번화한 시장에서 일본인 경찰 2명이 시위군중에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일본군 수비대 하사 이하 16명이 출동하여 시위대에 실탄사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시위군중도 해산 되었다.
유하영은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名籍表(大邱監獄)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397면
- 안동독립운동가 700인(김희곤, 안동시, 2001) 206면
- 刑事事件簿(大邱地方法院 安東支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