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1941년 일본 석천현(石川縣)에 있는 제4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하던 중 동교생인 조옥래(趙玉來) 등으로부터 사회주의 연구를 위한 독서회를 결성할 것을 제안받고 찬동하였다. 그리하여 동년 2월 조옥래·박응포(朴應苞) 등 5명과 함께 한국의 독립과 혁명을 목적으로 c·y·m·s(조선청년맑시즘연구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동 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재일한인학생의 졸업생 송별회·신입생 환영회·친목회·독서회·피크닉 등 가능한 모든 모임에 참석하여 창씨개명(創氏改名), 한글 사용금지, 지원병제도, 납세정책 등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인 본위의 의무 교육 실시, 민족차별정책 폐지 등을 논의하며 조국의 독립을 도모할 것을 협의하였다. 또한 1941년 9월 상순부터 부산고등학교(富山高等學校) 학생 최정률(崔定律)과 부산약학전문학교(富山藥學專門學校) 학생 노성완(盧性完) 등과 여러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갖고 민족독립을 성취할 것을 결의하다가 1942년 2월 18일 붙잡혔다. 1942년 4월 18일 금택지방재판소(金澤地方裁判所)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송치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특고월보(내무성 경보국 보안과, 1942. 4월) 105·109면
- 사상월보(사법성, 1943. 1, 2월) 63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324·1327면
- 사회운동상황(내무성 경보국, 1942) 796면
- 재일조선인사년표(姜徹編) 186·190·20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7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