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남 거창(居昌) 사람이다.
1927년경부터 고향에서 조선청년동맹(朝鮮靑年同盟) 조직부장 및 신간회(新幹會) 간부로 선임되어 민족통일전선 및 민족운동을 위해 활동하다가 국내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하는데 한계를 느끼던 중, 김원봉(金元鳳)의 처남 박문희(朴文熺)의 권유를 받고 김영배(金永培) 등과 함께 1932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1932년 김원봉이 의열단(義烈團)의 독자적인 항일투쟁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와 한중연합전략의 하나로 장개석(蔣介石)의 원조하에 중국 남경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 교외에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를 설립하자, 동년 10월 윤세주(尹世胄) 등과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1기생으로 입교하여 정치학·폭탄제조법·사격교련·기관총조종법 등을 수련한 뒤 1933년 4월 간부학교를 수료하였다.
혁명군사학교를 졸업하자 김원봉과 개별 면담 후 의열단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이육사(李陸史) 등과 함께 차기 군관학교 입교생 모집, 국내의 농민·노동자의 민족의식 고취, 혁명사상의 조성, 국내정세 보고 등의 밀명을 띠고 1934년 12월경 귀국하기 위해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거주증명을 제출하였다가 일경에 의해 신분이 발견되어 붙잡혔다.
붙잡힌 후 일본 장기(長崎)로 압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은 뒤 1935년 1월 본국으로 압송된 그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1936년 10월경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찰국) 185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其一) 37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26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43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133면
- 조선일보(1935. 1. 16)
- 사상휘보(고등법원검사국사상부, 1935. 9월) 제4호 115면
- 한국독립운동과 중국군관학교(한상도, 1994) 2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