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강원도 삼척(三陟) 사람이다.
삼척청년동맹(三陟靑年同盟)과 신간회(新幹會) 삼척지회에 가입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삼척청년동맹은 1924년 전국적 청년단체인 조선청년동맹의 산하단체로 존재하다가 1931년 청년총동맹의 해체를 전후하여 동년 10월경부터 투쟁형태를 전환하여 혁명적 노동조합 및 농민조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1933년 봄 삼척의 유공장(油工場) 노동자로 일하면서, 1933년 11월 혁명적 노동조합 건설을 위하여 변소봉(卞小鳳) 등과 함께 산업별노동조합지도위원회(産業別勞動組合指導委員會)를 조직하는 한편, 실업자조합(失業者組合)결성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1934년 6월 연초보급소 및 추동금광 습격사건에 연루, 붙잡혀 1935년 10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아 공소했으나 1936년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5. 10. 31. 함흥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동아일보(1935. 10. 27, 12. 5)
- 판결문(1936. 12. 23. 경성복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