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군(日軍) : 일제 군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원산(元山) 사람이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國光復軍總司令部)는 임시로 광복군을 4개 지대(支隊)로 편성하고 각 지대 내에 3개 구대(區隊)를 두고, 다시 각 구대 내에 3개 분대(分隊)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광복군의 부대 편성은 부대원의 다수 부족으로 1942년 4월 김원봉(金元鳳)이 이끄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함에 따라 겨우 2개지대로 편성될 정도였다.
이에 따라 광복군총사령부는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당한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공작(招募工作)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1944년 7월 중국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투신하기 위해 일본군을 탈출한 그는 동년 8월부터 11월까지 중국 호남성(湖南省) 부성장(副省長) 당빙초(唐憑草)에게 「일본제국 폭행, 한국독립의 필연론」을 제출하였으며, 11월에는 광복군 군관(光復軍軍官) 뇌명(雷明) 등으로부터 한국독립운동사와 중국어 강의를 받았다.
1945년 1월 중순 광복군 중위급으로 임명된 후 제9전구(第九戰區) 사령부 제3군단(第三軍團) 정치부원으로 중국 군대에 파견되어 중국군내에서 일본군 포로 심문, 한국인의 일본군 탈출 권유 선언문 및 한글과 일본어로 된 선전문을 작성하는 등 주로 선전·선동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5월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 장군과 주중(駐中) 미군사령관 웨드 마이어 중장이 한미군사연합작전(韓美軍事聯合作戰)의 일환으로 미군전략특수공작대(美軍戰略特殊工作隊)인 OSS 훈련을 실시하기로 하자, 미 공군장교의 알선으로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에 있는 미국 OSS 본부로 전보되었고, 6월에는 다시 호남성 장강(長江)에 위치한 미군 공군기지 본부로 전보되어 미군사지원단장(美軍事支援團長) 보좌관으로 광복이 될 때까지 대일 심리전을 수행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6권 448·449·451면
- 사진(중국 곤명 O.S.S 본부에서 촬영, 1945.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