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충남 금산(錦山)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23일 충남 금산군 금산읍(錦山邑)에서 군중을 주도하여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금산에서의 만세운동은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면서 김용술(金用述)·임승환(任勝煥) 등의 청년들이 주도하여 3월 하순경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금산청년대표'의 이름으로 격문을 작성하여, 3월 22일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격문 1백 50여 매를 인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3일 금산 장날에는 두 차례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오후 2시를 기해 장터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김용술 등 주동 인물을 체포하면서 해산하였다. 두 번째는 밤 10시경에 김일남이 주도한 30여 명의 시민들이 남산에서 출발하여 읍내를 행진하였고, 이에 호응한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크게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6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4. 18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
- 금산군지(금산군지편찬위원회, 1987) 21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550·5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