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국치 후 망국의 한을 안고 서간도 환인현(桓仁縣)으로 이거하였으며, 1919년경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함으로써 항일운동에 진력하였다.
그 뒤 비밀리에 입국, 고향으로 내려가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그는 고성군 영현면(永縣面)의 정양구(鄭亮九)·마능숙(馬能淑)·한보한(韓輔漢) 및 개천면(介川面) 옥천사(玉泉寺)의 승려 한봉실(韓奉實) 등의 동지들과 함께 창원군(昌原郡) 서면(西面)의 최병화(崔炳化), 함안군(咸安郡) 칠북면(漆北面)의 박수현(朴秀玄)·구찬문(具贊文) 등을 찾아가 독립선언서와 독립단원의 인장을 제시하고 군자금 250여 원(圓)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일경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1920년 12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관계적록(경상남도경찰부, 1936) 33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부산·경남 3·1운동사(3·1동지회, 1979. 9. 10) 655·6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