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1938년 1월경부터 일본 대판시(大阪市)에 있던 한인 야학교인 성심야학교(誠心夜學校) 교사로 활동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성심야학교는 이봉춘(李奉春)이 1934년경부터 대판시 동성구(東成區) 저사야중(猪飼野中)의 가정집에다 개설한 한인 학교로, 빈곤한 한인 자제들을 모아 한국의 실상과 독립국가 건설의 당위성을 인식시킴으로써 민족의식의 고양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봉춘·김주삼(金柱三)·고갑평(高甲平) 등의 동료교사와 함께 20∼30명의 한인 학생들에게 표면적으로는 국어, 산수 등의 일반 교육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실상은 조선독립가를 만들어 부르게 하며, 교재의 주안은 한국의 역사, 한국어의 유지, 한국 예찬 등에 두는 방침으로 오로지 민족의식의 계몽에 힘쓰는 한편, 독립국가를 건설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는 얻을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 이와 같은 민족의식 강화교육은 이후 11곳을 전전하며 핵심인물들이 붙잡힐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와 함께 그는 1938년 1월 이후 독자적으로 대판시 동성구 저사야서(猪飼野西) 천신(天神)구락부 옆, 그리고 동성구 중천정(中川町) 부근 등 두 곳에다 무명의 야학교를 개설하고 항일민족의식 고양에 주력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11월 14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경에 붙잡혀 1943년 11월 26일 대판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른 뒤 1945년 4월 6일 출옥하였으나 고문 및 옥고의 후유증으로 출옥 열흘만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8권 55∼5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346∼13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