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강원도 삼척(三陟) 사람이다.
1930년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 중국 북경으로 망명한 김용운은 북경대학에 다니면서 북경의 항일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무렵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그는 1931년 한위건(韓偉健)의 소개로 북평시반제동맹한인지부(北平市反帝同盟韓人支部)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주로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3·1운동 기념일을 비롯하여 메이데이, 간도폭동기념일(間島暴動紀念日), 광동사기사건(廣東沙基事件) 기념일, 반전(反戰) 데이, '한일병합' 기념일, 혁명기념일,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 등과 관련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격문을 배포하였다. 또한 그는 '타도 일본제국주의' 등과 같은 격문을 직접 작성하여 대중에게 배포하였다.
그러던 중 투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는 1931년 11월 귀국하여 학생층 및 노동자, 빈농을 중심으로 반제동맹(反帝同盟)을 조직하는데 힘을 쏟았다. 망명하기 전부터 뜻을 같이하던 동지인 경성의학전문학생 최면용(崔冕鏞), 법학전문학생 홍재선(洪在善) 등과 국내의 운동정세를 파악하는 한편, 구체적인 운동방략 등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경기도 경찰부에 발각되어 이들 모두는 1931년 12월 12일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32년 7월 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2. 6. 28, 7. 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韓國民族解放運動史資料集(김경일編) 第2卷 285∼286面
- 北平大學法學院 講義證(1931. 9. 14)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2輯 334面
- 朝鮮日報(1932. 6. 28,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