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전북 김제(金堤) 사람이다.
최익현(崔益鉉)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태인(泰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를 강박하여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국권을 강탈하였다. 이에 분개하여 전국 각지에서는 일제의 축출과 일진회원 등 친일파 처단을 목표로 대규모 의병항쟁을 전개하여 갔다.
이러한 때에 유종규 역시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1906년 4월부터 최제학(崔濟學)·권재일(權在一)·최학엽(崔學燁) 등과 함께 종산(鍾山)에서 거의 방안을 협의하였다. 같은 해 윤 4월 유림의 거두로서 의병을 일으킬 목적으로 호남으로 내려온 최익현이 문사 수십인을 거느리고 전북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학을 마치고 거의하면서 전국 사림(士林)에게 일본정부의 죄상을 발표하였다. 이 때 유종규는 무성서원의 소임으로서 강회에 참여하였고, 최익현 의병장이 의병을 모집하여 좌우익 선봉장, 후군장 및 소모장, 좌우 여러 종사를 배치할 때, 그는 전 낙안(樂安)·임실(任實)군수 임병찬(林炳瓚) 등과 더불어 최익현 의진의 간부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최익현 및 유종규를 비롯한 의병 지도부는 봉기를 개시한 지 일주일만에 모두 포박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4월 27일 일본군사령부에 구금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그리고 최익현은 감금 3년, 임병찬은 감금 2년의 형을 받은 후 모두 일본 대마도로 압송되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7월 8일 유종규를 비롯한 최익현·임병찬·고석진(高石鎭)·김기술(金箕述)·문달환(文達煥)·임현주(林顯周)·조우식(趙愚植)·조영선(趙泳善)·최재학(崔在學)·나기덕(羅基德)·이용길(李容吉)·유해용(柳海容) 등 12명은 대마도에 도착하여 위수영(衛戍營) 경비대 안에 구금되었다. 이곳에서 최익현은 그 해 11월 17일 단식으로 순국하였고, 유종규를 포함한 나머지 제자들은 온갖 고초를 겪은 뒤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102면
- 전북의병사(전북향사문화연구회, 1992) 하권 420·440·454면
- 습재실기(간행년도미상) 64·94·98면
- 국역면암집(민족문화추진회, 1978) 172·185·20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377면
- 습재최제학선생유고(진안향사문화연구회, 간행년도미상) 79·114·1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2집 59·75·85·9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