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진주(晋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10일경 진주 읍내에서 황종화(黃鍾和)·하남식(河南植) 등 6명의 동지와 함께 「목하 서울을 중심으로 맹렬히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므로 우리도 경남을 대표하는 일대 단체를 조직하자」는데 합의하여 경남단(慶南團)을 조직하고. 6월 초순부터 9월 중순 사이에 하용제(河龍濟) 등 여러 명에게 가입을 권유하고 운동자금의 출자를 요구하였다. 또한 6월 하순에 그는 진주군 대곡면(大谷面)의 하종식(河宗植) 외 8명을 경남단의 임원으로 임명한다는 이강(李剛) 공(公) 명의의 임명장을 서울로 올라간 황종화로부터 건네받아 본인들에게 교부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년 7월에 그는 진주군 평거면(平居面) 귀곡리(貴谷里)의 정태석(鄭泰奭)을 방문하여 경남에 상해 임시정부 지부를 설치할 계획임을 말하고 원조를 요청하였다. 동년 8월 20일경 그는 황종화와 의논하여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할 임무를 맡겨 권태용(權泰容) 외 2명을 상해로 파견하였는데, 권태용은 임시정부의 경상남도 금전수입원(金錢收入員)으로 임명되어 9월 18일경에 귀환하였다.
그 뒤로도 그는 10월 하순까지 사이에 세차례 더 정태석을 방문하여 600원의 원조금을 지출해 줄 것을 요구하여 이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사기미수 및 협박미수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는데, 취조 과정에서의 모진 고문과 수형 기간 중의 가혹한 체형(體刑)으로 인하여 출옥 후에도 심신의 고통을 겪다가 5년 뒤에 46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犯罪人名簿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415∼417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205·206·239·24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