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20년 중국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아성현(阿城縣)에서 강화인(姜化仁)·박삼근(朴三根) 등과 함께 북만조선인청년총동맹(北滿朝鮮人靑年總同盟)을 조직한 뒤 선전부장이 되어 잡지 〈농군〉(農軍)을 발간하면서 목단강(牧丹江) 일대의 재만 동포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그 후 1924년 흑룡강성 산시(山市)에서 신민부(新民府) 기관지 〈신민보〉(新民報)의 논설위원으로 배일사상 확산을 위한 선전활동에 진력하였고, 1925년 아성(阿城)에서 김 훈(金勳) 등과 함께 잡지 〈혈청년〉(血靑年)을 발간하여 혁명적 국권회복 방략의 당위성과 그 투쟁방법을 선전하였으며, 1927년 이백파(李白波)와 함께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을 조직하여 중앙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서울의 일본인 집단살해 계획을 추진하였다고 한다. 1927년 1월 중국 중동선(中東線) 해림(海林)에서 단두단(斷頭團)의 명의로 경북 영일군(迎日郡) 신광면(神光面)의 이동빈(李東彬)에게 독립운동 자금 1만 5천 원의 기부를 요구하는 편지를 띄워 놓고 비밀리에 입국하려다 일경에 붙잡혀 동년 9월 27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무정부주의 노선으로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려 하였으나 동지들의 사산(四散)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향한 뒤 일경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으면서 20여 회의 예비검속까지 당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