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6년 1월 서울에서 창의단원(倡義團員) 김응선(金應先)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신청사(新廳舍) 폭파 책임을 맡아 실행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명옥은 1925년 12월 15일 서울에서 창의단에 가입하였다. 창의단원 김응선ㆍ계의산(桂義山) 등으로부터 "조선독립은 폭격, 암살을 제일로 삼는다"는 말을 듣고 공감하여 거사를 준비하였다.
1926년 1월 28일 김운용(金云用)ㆍ송암우(宋岩于)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1월 29일과 30일에 계의산과 여러 관공서를 순찰하고, 31일 새벽을 기하여 주요 청사에 폭탄을 투척할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폭탄 및 포고문을 그들이 묵던 청진동 진일여관(進一旅館)에 숨겨두었는데, 그날 밤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및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8년 11월 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7. 8. 31)
- 假出獄關係書類
- 東亞日報(1927. 5. 12, 6. 21, 7. 10, 7. 30, 8. 2, 8. 12, 8. 23, 8. 27, 9. 1)
- 每日申報(1927. 5. 4, 5. 5, 5. 11, 5. 12, 5. 18, 5. 24, 6. 18, 6. 21, 7. 10, 8. 2, 8. 12, 8. 13, 8. 27, 9. 1, 9. 2)
- 朝鮮日報(1927. 5. 5)
- 中外日報(1927. 8. 12, 8. 13, 8. 23, 8. 27)
- 騎驢隨筆(國史編纂委員會, 1971) 350~3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