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0년 음력 5월 고두환(高斗煥) 등이 만주 관전현(寬甸縣)에서 독립단 양기하(梁基河)가 박기수(朴基洙) 등을 만났다. 이들에게 권총과 탄환 등을 건네주며 황해도에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고 자금 모집을 방해하는 자는 처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음력 5월 11일 독립단원들은 압록강을, 음력 5월 27일경 대동강을 넘어 황해도에 들어와 5월 28일 은율군 장연면(長連面) 서부리(西部里) 황윤상의 집에 도착했다. 황윤상은 독립단원들을 자택에 들여 숙식과 은신처를 제공하고 연락업무를 담당했다.
황윤상의 집에서 변춘식(邊春植), 김영섭(金榮燮)도 합류해 친일 군수인 최병혁과 군참사(郡參事) 고학륜(高學倫)을 처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음력 7월 2일(양력 8월 15일) 11시경 실행에 옮겨 최병혁을 저격해 즉사시켰으나, 고학륜 처단은 성공하지 못했다.
황윤상은 독립단원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친일 군수 및 군참사 처단 활동을 지원하다 체포됐다. 1921년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海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정치범처벌령(政治犯處罰令), 총포화약류 취체령(取締令) 위반’으로 인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21년 11월 30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재선고받아 상고했다. 그러나 1922년 2월 9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상고가 기각됐다. 이후 황윤상은 해주감옥(海州監獄)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7월 5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7. 20, 7. 21, 7. 27, 8. 10, 8. 11, 8. 12, 8. 20, 1922. 7. 1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10집 1234, 12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