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천마산대는 1920년 3월 대장 최시흥(崔時興)을 비롯해 최지풍(崔志豊)·박응백(朴應伯)·최천주(崔天柱)·김세진(金世鎭) 등 대한제국(大韓帝國) 군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항일무장단체이다. 조직의 근거지가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의 천마산(天摩山)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천마대(天馬隊)·천마별영(天摩別營)·철마별영(鐵馬別營) 등으로도 불렸다.
결성 후 천마산대에서는 중대장 최시흥·제1소대장 허기호(許基浩)·제2소대장 최지풍·제3소대장 김덕명(金德明) 등의 군대식 편제 아래, 낮에는 화승총으로 조총 교련과 곤봉으로 병식(兵式) 체조를 하는 등 군사훈련을 하였다. 한성호 역시 천마산대의 소대장으로서 동지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총을 메고 산에서 마을로 내려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4월 26~27일 김옥선 등과 함께 구성군 천마면(天摩面) 연창동(延昌洞)에서 부호(富戶) 정학주(鄭學柱)·김응구(金應龜)·유한진(劉漢鎭)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주도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같은 해 6월 29일 김옥선 등 동지들과 함께 의주경찰서(義州警察署)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8월 3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신의주지청(新義州支廳)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9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24년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로 징역 7년 6월로, 1927년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로 징역 6년 10월 14일로 두 차례 감형되었다. 1927년 9월 30일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김국선)
- 매일신보(每日申報)(1920. 8. 29, 1922. 9. 3)
- 대판조일신문(大阪朝日新聞)(1920. 9. 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마산대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