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7년 5월 함남 영흥군 일대에서 조선독립군비단과 연계하여 독립운동 자금
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7년 5월 27일 독립단원 이춘우(李春雨) 등 2명이 함남 영흥군(永興郡) 순령
면(順寧面) 작산리(鵲山里) 거주 주씨(朱氏)를 방문하여 군자금 6만원을 요구하
였으나, 주씨는 현금 15원을 제공하면서 후일 다시 올 것을 간청하였다. 이춘우
등은 다시 영흥군 덕흥면(德興面) 백북리(白北里) 거주 한씨(韓氏)를 방문하여
군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청하고 사라졌다. 이 사실을 탐지한 영흥경찰서는 일
본군과 합동으로 영흥읍을 중심으로 수색한 결과 28일 영흥읍 운평리(雲坪里)
그의 집에 은신해 있던 독립단원을 체포하였다. 한편, 이춘우의 체포 소식을 들
은 그는 다른 지방으로 피신하여 은신하다가 8월 6일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 사
건 관련자를 북간도에 본부를 둔 노승일(盧承一) 일파의 조선독립군비단으로 파
악하였다.
대한독립군비단은 1919년 11월 1일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 왕가동(王哥
洞) 동평덕(東坪德) 이동백(李東白)의 집에서 이태걸(李泰杰), 이병률(李秉律)·
김찬(金燦) 등이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서, 함남 지방에서 군자금과 단원 모집
에 주력하였다.
1927년 8월 2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
서 공소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中外日報(1927. 6. 1)·朝鮮日報(1927. 8. 27)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7. 9. 23)
- 刑事控訴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