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1일 함경남도 이원군 남면 차호리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태극기를 내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천여 명의 군중이 참여했다. 군중 앞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노력하자”고 연설하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1919년 3월 24일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을 받았다. 1919년 7월 경성복심법원 및 동년 10월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1920년 8월 ‘평남도청 폭탄 사건’으로 피신 중인 안경신의 은닉을 도왔다. 안경신 등은 평양 지역에서 각 관청을 파괴하는 한편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평안남도 도청에 폭탄을 던져 바깥벽과 유리창을 깨트리고 평양경찰서에도 폭탄을 던져 파괴하고자 했으나 폭탄이 비에 젖어 불발되었다.
이로 인하여 1920년 12월 안경신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당시 나이 30세였다. 1921년 6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범인 장닉(藏匿)’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22년 12월 출옥하였다. 1923년 2월부터 차호청년회(遮湖靑年會) 정기총회에서 체육부 부원으로 선임되었다. 1924년 4월경 이원군 남면 소재한 ‘철산노동친목회(鐵山勞動親睦會)’ 간부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7. 24)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10. 4)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5. 2, 6. 12, 1923. 3. 18, 1924. 4. 7)
- 형사공소건부(刑事控訴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