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3월 충남 대전(大田)에서 나인영(羅寅永)ㆍ오기호(吳基鎬) 등이 주도하는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 계획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나인영ㆍ오기호ㆍ김인식(金寅植)ㆍ김동필(金東弼)ㆍ박대하(朴大夏)ㆍ이홍래(李鴻來)ㆍ이용채(李容彩)는 을사오적 이지용(李址鎔)ㆍ이근택(李根澤)ㆍ박제순(朴齊純)ㆍ이완용(李完用)ㆍ권중현(權重顯)을 의병 세력을 모집하여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 민영기(閔泳綺)와 법부대신(法部大臣) 이하영(李夏榮)을 처단 대상에 포함하고 1906년 음력 12월 말 거사하기로 합의한 뒤 참간장(斬奸壯) 7장을 만들어 김동필에게 발부하였으나, 기일이 지나도 당원들이 모이지 않아 실행하지 못하였다. 1907년 3월 25일(음력 2월 12일) 오전 10시를 기하여, 을사오적이 다니는 길목에 당원들을 매복시켰다가 일제히 저격하기로 결정하고, 그 부서를 정하고 각자에게 단총과 동맹서 및 참간장을 교부했다.
거사대는 당일 아침부터 각자 예정한 장소에서 을사오적의 통행을 기다렸다. 오전 10시경 오기호는 장사들을 인솔하고 참정대신 박제순을 기다리던 중, 박제순이 광화문(光化門) 앞에 나타났지만, 기회를 놓쳐 실패하고 말았다. 11시 30분경 이홍래는 강상원(康相元)ㆍ황주사(黃主事)ㆍ지참봉(池參奉)ㆍ이만장봉(李萬丈峰) 등 18인을 지휘하며 서울 중서(中署) 사동(寺洞) 노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군부대신 권중현의 통행을 막고 인력거 위에서 요격했지만 적중하지 못하였고, 이 과정에서 강상원이 일본 순사에게 체포되어 경무청(警務廳)으로 이송되었다.
지팔문은 1907년 7월 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전남 지도군(智島郡) 지도로 유형(流刑) 10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理院 : 1907. 7. 3)
- 日省錄(1907. 5. 26, 6. 3, 10. 23)
- 高宗實錄(1907. 7. 6)
- 大韓每日申報(1907. 3. 27, 3. 28, 4. 3, 4. 4, 4. 10, 7. 5, 7. 14)
- 大韓帝國官報(1907. 4. 3, 7. 15, 7. 16, 12. 3)
- 共立新報(1907. 5. 10, 8. 16)
- 皇城新聞(1907. 7. 9, 7. 15)
- 政府 전복과 대신 암살에 관한 件(1907. 4. 17) 統監府文書(1907) 제9권
- 大韓自强會月報(1907. 7. 25) 第13號 67면
- 梅泉野錄(黃玹, 1955) 卷之五 41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1976) 제3집 50, 52, 55면, 제11집 541~544면
- 삼천리(1930. 4. 1) 제5호 3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7권 150~155면, 제8권 7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