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조득렬은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수원읍(水原邑) 매산리(梅山里)에서 수원공립보통학교(水原公立普通學校)를 마치고 인쇄 직공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1931년 2월 경성으로 이주하여 서울 공덕동(孔德洞)에 있던 용일양조장(龍一釀造場)에서 일하였다. 이때 인진명(印振明),이금진(李金振),윤락삼(尹樂三),최영진(崔榮鎭),구승회(具承會)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 고관을 폭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평소 안중근(安重根),윤봉길(尹奉吉),이봉창(李奉昌) 의사를 숭배하여 이들과 같은 방법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인진명 등은 일제의 조선 침략과 만주 침략에 대한 토론을 통해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러한 활동 끝에 조득렬 등은 조선총독(朝鮮總督) 우원일성(宇垣一成)과 정무총감 이하 각 고관을 폭살하고 철도와 체신국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당시 중석광산의 화약 취급 주임이었던 인진명에게 폭탄 제조방법과 함께 화약을 제공 받았다. 그리고 1935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폭발물 4개를 만들었고, 이를 이용하여 조선총독을 폭살하려고 하였다.
첫 번째 거사는 조선총독이 일본을 갔다가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점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 계획은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도 하지 못했다. 이후 다시 조선총독이 온양(溫陽) 온천에서 휴양하고 돌아오는 기회를 포착,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근방에서 폭살하려다 이마저 여의치 않아 뒤로 미루었다.
조득렬과 동료들은 폭탄을 다시 제작하여 효창공원(孝昌公園)에서 시험 폭파까지 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조득렬을 비롯한 동지들의 체포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조득렬은 징역 10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總督暗殺計劃者 檢擧에 관한 件(地檢秘 제9999호, 1936. 2. 8)
- 朝鮮總督暗殺未遂事件 檢擧에 관한 件(京龍高秘 제11151호, 1936. 4. 24)
- 한민(1936. 8. 29)
- 東亞日報(1936. 8. 18)
- 朝鮮中央日報(1936. 8. 18)
- 朝鮮日報(1936. 8. 1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0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800~803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