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3년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에서 천마산대(天摩山隊)와 연계한 후 일제의
창참주재소(倉站駐在所)를 공격하여 순사를 처단하고 면사무소를 공격하다 체
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여름 평안북도 희천군 북면(北面)에서 임성섭(林成涉), 임성률(林成律)
형제 외 2명이, 천마사령(天摩司令) 최시흥(崔時興)의 휘하인 최오산(崔午山)의
권유로 천마산대를 지원할 목적으로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을 조직하였다.
1923년 음력 7월 하순 최오산과 그의 단원들이 희천군 북면 명문동(明文洞) 요
참(要站)에 있는 임성률의 집에 숙박한 사실을, 임성률이 경찰 관헌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희천경찰서 북면 경찰관주재소에 유치되어 취조를 받자, 최오
산과 단원들은 주재소를 공격하여 순사를 사살하고 또 청사 등을 불태우고 임성률을 탈환할 계획을 협의하였다. 조준룡은 동년 9월 21일 밤 천마대원·독립
청년단원이 협동하여 실행한 거사에 참여하여, 창참주재소와 주재소의 청사 2
동, 북면사무소의 청사 1동을 비롯하여, 사람이 거주하거나 또는 현재하는 창참
전 마을의 건물 20여 동을 전소시켰으며, 최오산 등이 도순사(道巡査) 관원계태
랑(菅原計太郞) 외 1명을 총살하는 것을 도왔다.
'희천군 창참주재소 습격사건'으로 불리는 동 사건으로 체포되어, 1924년 7
월 12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과 살인·방화 미수로 징역 5년(통산수 196일)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28년 12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개벽(1924. 12) 54호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68~580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개벽(1924. 9) 51호
- 개벽(1924. 6) 48호
- 朝鮮日報(1924. 10. 18)
- 獨立新聞(1924. 7. 26)
- 時代日報(1924. 4. 6, 5. 4, 5. 19)
- 東亞日報(1923. 9. 25, 9. 27, 10. 3, 1924. 4. 4, 5. 6, 5. 30, 6. 23,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