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함북 부령(富寧) 사람이다.
1931년 부령군 청암면(靑岩面) 반죽동(班竹洞)에서 장병철(張炳喆) 등 7명과 함께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동년 7월 2일 장금룡(張錦龍) 등과 함께 세금체납자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처사에 항의하는 뜻으로 면사모소에 방화하고 전선을 절단하여 통신을 두절시켰다.
1932년 6월 장금룡·장용손(張龍孫)으로부터 조선총독부 타파, 일본의 침입이민(侵入移民) 반대, 무산대중 본위의 국가건설, 국유림·면유림의 편입 반대와 농회(農會) 타파 등의 주장을 담은 항일격문 약1천매를 등사해 받아 청암면 일대 각 마을의 노상 및 민가에 살포하였다.
이러한 사실들로 인하여 1933년초에 다른 동지 13명과 함께 일경에 붙잡힌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장기 구금 끝에 1934년 11월 6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과 방화 및 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아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中央日報(1934.11.8)
- 朝鮮日報(1934.10.31)
- 判決文(1934. 11. 6 淸津地方法院)
- 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
- 東亞日報(1934.10.28, 10.29, 10.31,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