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이덕기는 경상남도(慶尙南道) 고성군(固城郡) 구만면(九萬面) 출신으로 1927년 1월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활동했다. 1929년 9월 3일 일본 요코하마 저수지 공사장에서 한인 노동자 300여 명과 함께 직장대회를 열고 동맹파업을 결행하였다.
한인 노동자들은 ①민족적 임금차별 철폐, ②중간 착취 즉시 철폐, ③최저임금 1원 80전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단행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주동자인 김윤삼(金潤三)‧김태규(金泰圭)‧신쾌선(辛快善) 등을 검거했으나, 파업단은 그들을 탈환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 100여 명이 현장으로 출동하여 파업단을 해산시키는 동시에 이덕기 등 주동자를 검거했다.
한편 1940년 6월 11일 문성훈‧이종문‧정갑진 등 중심인물 5명이 비밀회합을 갖고 비밀결사 ‘건달회(建達會)’를 조직하였다. 건달회의 ‘건’은 무정부주의 조직의 재건을 뜻하며 ‘달’은 목적 달성을 의미했다. 건달회는 일본 참모본부‧육군성‧해군성‧내무성 등 국가 최고기관 습격을 계획했다. 당시 도쿄(東京) 고이시카와구(小石川區)에서 고물상을 운영했던 이덕기는 이러한 활동에 자금을 제공했다.
1940년 12월 25일 도치기현(栃木縣)‧이바라키현(茨城縣)의 특고과(特高課)에서 건달회 관련자 13명을 일제히 검거하였다. 1941년 6월 26일 이덕기도 일제에 검거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도쿄 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9. 20)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9. 20)
- 소화특고탄압사(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松浦總三, 1975) 제7권 164∼170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제4권 652∼65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