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8월 보합단(普合團)에 입단하였고 서울로 파견되어 군자금 모집에 종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8월 보합단원 김도원(金道源)에게서, 김중량(金仲亮), 김유신(金攸信)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여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평안북도 의주(義州)의 동암산(東岩山)에서 보합단을 조직하였음을 듣고 가입하였다.
1920년 11월 10일경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심천면(深川面) 월곡리(月谷里) 자신의 집에서, 조상백(曺相伯)으로부터 경성(京城)의 이종형(李鍾滎, 滿洲日報의 이사)이 조직한 무장계획단이 널리 청년을 모집하여 군자금을 모으고 무기를 구입하여 청년에게 주어서 일본에 대항하려 한다는 말을 들은 뒤, 장정용·조상백은 경성 및 삼남(三南) 방면에 지부를 설치하려는 김도원과 동일 목적을 지녔음을 확인하고 서로 제휴하기로 합의하였다. 동년 11월 15일에 경성 운니동(雲泥洞)의 변석연(邊錫淵)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는 보합단 명의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보합단원 김도원, 이광세(李光世)와 함께 선천을 떠나 경성에 도착하여 조상백과 합류하였는데, 이때 김도원은 장정용의 도움을 받아 배(梨) 상자 속에 권총 4정과 탄환 약 200발을 넣어 출발하였다. 12월 4일 김도원이 변석연을 찾아가서 군자금 요구에 대하여 상의할 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의 형사 이정선, 유참열 등의 총격을 받아 교전 끝에 이정선 외 1명을 사살하고 도피하였는데, 장정용은 이 사건에 관계한 이광세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생도의 모자로써 학생으로 분장시켜 도피를 도왔다.
1922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 구류일수 200일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217면
- 武裝獨立運動秘史(蔡根植, 1949) 69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8) 제35권 14~15, 28~29, 79~84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8) 제34권 83~89면
- 東亞日報(1921. 11. 27, 1922.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