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 소속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의군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분립한 독립운동단체였는데, 1919년 4월 북간도에서 조직된 이범윤(李範允) 등의 의군부와는 구별된다. 총장 채상덕(蔡尙悳), 군무총감 전덕원(全德元), 정무총감 김평식(金平植), 재무총감 이병기(李炳基), 사법부장 계추강(桂秋岡) 등이 핵심인물이었다. 국내의 일제기관 습격과 파괴를 목적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는데, 특히 1924년 8월의 평북(平北) 의주군(義州郡) 청성진(淸城鎭) 습격사건과 동군(同郡) 영산주재소(永山駐在所) 소각사건(燒却事件)이 유명하였다. 이후 1924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통합되었다.
이만형은 1920년 길림성(吉林省) 관전현(寬甸縣)에서 광복군총영(光復軍統營)에 참여하였고, 1922년 독립단에 참여하여 의주(義州) 구룡포(九龍浦) 대안(對岸)에서 일경(日警)과 교전하였다. 1923년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 경무국원(警務局員)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大韓統軍府 職員簿(關東廳警務局 : 1923. 5.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6집 1046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29권 188면
- 東亞日報(1923. 10. 28)
- 獨立新聞(1922. 10. 30)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0.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