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3년 9월 평북 희천군(熙川郡)에서 천마산대(天摩山隊)의 후계조직인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에 참여하여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였다.
천마산대는 3ㆍ1운동 직후 1919년 12월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박응백(朴應伯) 등 대한제국 시절의 군인들이 조직한 항일무장단체이다. 천마산대는 일제 경찰서ㆍ경찰관주재소ㆍ면사무소 공격, 일제 경찰ㆍ친일 밀정 처단, 군자금 모집 등을 수행했다. 1922년 최시흥 등이 붙잡히면서 국내 활동은 중단되었으며, 검거를 피한 나머지 대원들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편입되어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1922년 여름 무렵 조준용(趙俊龍) 등을 중심으로 독립청년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는데, 송영수는 북면(北面) 독립청년단에 참여하였다. 1923년 9월 17, 18일과 9월 21일에 동지들과 함께 희천군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창참경찰관주재소(倉站警察官駐在所), 북면사무소 등을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23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방화죄, 살인죄 등으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다.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5년 6월 23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時代日報(1924. 4. 6, 5. 4, 5. 1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69~580면
- 判決文(平壤覆審法院, 1924. 7. 12)
- 東亞日報(1923. 9. 25, 9. 27, 10. 3, 1924. 2. 21, 4. 4, 4. 19, 5. 4, 5. 18, 5. 19, 5. 24, 5. 26, 5. 27, 5. 31, 6. 8, 6. 23, 7. 6, 7. 14)
- 朝鮮日報(1923. 9. 25, 12. 6, 1924. 6. 23, 7. 5, 7. 13, 10. 18)
- 每日申報(1923. 10. 3, 11. 6,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