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2년 평북 희천군(熙川郡)에서 천마산대(天摩山隊)에 가담하여 이듬해 9월 30여 명의 대원과 함께 희천군 창점주재소(倉站駐在所)와 면사무소(面事務所)를 기습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천마산대는 1919년 3ㆍ1운동 직후에 최시흥(崔時興)ㆍ최지풍(崔志豊)ㆍ박응백(朴應伯)ㆍ최천주(崔天柱)ㆍ김세진(金世鎭)ㆍ심용준(沈龍俊)ㆍ양봉제(梁鳳濟) 등 한말의 군인들이 조직한 단체로 평북 천마산에 본거지를 두었다. 대장은 최시흥이고 단원은 5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화승총(火繩銃)과 일본 경찰에게서 빼앗은 총검 등으로 무장하고 유격전을 벌여 일제 행정기관 수십 곳을 파괴하고, 경찰과 밀정을 사살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일본 경찰대의 공격을 피하여 만주로 건너가 1922년 재만독립군 각 부대가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로 통합될 때 흡수되었다.
1923년 9월 21일 밤 변창룡 등 대원들은 참정주재소와 면사무소의 전화선을 끊고 주변 여러 곳에 불을 놓아 일제의 경비망을 교란하였으며, 도순사(道巡査) 관원신북랑(官原新北郞)을 사살하였다. 이후 변창룡은 강계군(江界郡) 입관면(立館面) 양피동(陽皮洞)의 산속에서 체포되었다.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방화죄, 살인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7년 4월 22일 형집행정지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判決文(平壤覆審法院 : 1924. 7. 12)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3. 9. 25, 9. 27, 10. 3, 1924. 2. 21, 5. 4, 5. 19, 5. 18, 5. 24, 5. 26, 5. 27, 5. 31, 6. 8, 6. 23, 7. 6, 7. 14)
- 朝鮮日報(1924. 7. 13, 10. 18, 6. 23, 7. 5, 7. 13, 10. 18)
- 時代日報(1924. 5. 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71, 5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