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벽동(碧潼) 사람이다. 1923년 압록강 대안(對岸)에서 일선의 일본 경찰을 습격하여 경찰망을 교란할 것을 목적으로 양학준(楊學俊)·김기열(金基烈)·김병서(金炳瑞)·김만홍(金晩洪)·김계주(金桂柱)·김용필(金容弼) 등과 함께 무장독립단(武裝獨立團)을 조직하고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1923년 8월 13일 김익봉(金翊奉) 등과 함께 평북 벽동군 운시면(雲時面) 소재의 운시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을 사살하기로 논의·결정하였다. 그에 따라 이튿날 오후 9시 30분경 전원 군복을 정제(整齊)하고 장총으로 무장한 독립단원 11명을 인도하여 운시경찰관 주재소 뒷산에 은신시키고 습격의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경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독립단원들을 두 부대로 나누어 주재소를 습격하고 주재소 순사들을 사살하였다. 또한 주재소 안에 보관되어 있던 장총과 경찰복장 등 각종 물품을 획득한 뒤, 석유를 뿌려 주재소와 동 숙소를 소각하였다. 이어 계속해서 동군 대평면(大平面) 면사무소로 진격한 그는 단원들과 함께 대평면사무소를 습격하고 그 곳에 보관되어 있던 현금 30여 원을 군자금으로 확보하였다. 그 후에도 평북 각지를 순회하며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 경찰서를 습격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24년 3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7면
- 동아일보(1924.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