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순천(順川) 사람이다.
1919년 11월 평남 순천(順川)과 성천(成川) 등지에서 최병갑(崔炳甲)·박곽수(朴郭洙) 등과 함께 항일민족정신을 선전·고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할 목적으로 비밀결사 숭의단(崇義團)과 공성단(共成團)을 조직하였으며, 주기정(朱基鼎)·조기수(趙基洙)·이창해(李昌海)·한국언(韓國彦)·최태준(崔泰俊) 등을 권유하여 단원으로 가입시켰다. 그 후 동년 음력 11월 숭의단 동지들과 함께 평남 각지의 부호를 두루 방문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12월 27일 조기수·최태준·한국언 등과 함께 평남 성천군 삼덕면(三德面) 문원리(文原里) 정현조(鄭炫祚)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모집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부일밀고자(附日密告者) 정현조가 협조하는 척하며 관할 경찰서에 신고함에 따라 포위된 그는 최병갑과 함께 총을 쏘는 등 결사 항전하며 그곳을 탈출하였으나 동지 주기정과 김병항(金炳恒) 등은 붙잡히고 말았다. 이와 같은 정현조의 부일·반민족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그는 1920년 1월 1일, 숭의단원과 함께 친일밀고자 정현조의 집을 방화·소각하고 그 가족들을 처단하였다. 그 후 한국언과 함께 동군 신창면(新倉面)의 최홍주(崔洪柱)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갹출하는 한편, 김홍록(金洪錄) 등과 함께 천성면(天成面) 석봉름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4백 원을 모집하였다. 또한 1920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최병갑과 함께 삼덕면(三德面) 최치민(崔致珉)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510원을 모집하였으며, 5월에는 쌍룡면(雙龍面) 조대술(趙大述)의 집을 방문하여 2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송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0년 6월 21일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그리하여 1922년 4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 및 방화·살인미수죄 등으로 사형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22년 6월 1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1922년 7월 12일 평양감옥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2. 7. 14)
- 독립신문(1922. 7. 22)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9·98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124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46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70·44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1집 89면
- 현대사자료(강덕상) 제27권 411·461·47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3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