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3학년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의 차별대우에 반발하다가 정학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 그는 1932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감행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만주어 습득을 목적으로 1932년 3월 중국 안동현(安東縣)에 위치한 소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뒤 동년 5월 중국 봉천(奉天)보습학교로 전학한 그는 동년 7월에는 북평(北平)에 있는 지행중학교(知行中學校)에 입학하였다. 지행중학교에 재학 중, 1933년 4월 초순 남경중앙군관학교(南京中央軍官學校) 출신 이익성(李益星)으로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권유받자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최대혁(崔大赫)·박찬익(朴贊翊) 등으로부터 민족주의 교육을 받았다. 그 후 다시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으로 이동하여 김 구(金九)·엄항섭(嚴恒燮) 등으로부터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의열투쟁과 혁명운동 상황을 교육받고 일제를 타도하여 민족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에 따라 1934년 11월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던 중, 1935년 7월 교관 이청천(李靑天)의 권유로 군관학교 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한국군인회(韓國軍人會)에 가입하여 전민족의 항일통일전선 결성과 국내에 무장부대를 조직할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1935년 낙양군관학교를 수료한 그는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여 활동하다가 1936년 1월 초순경 김동우(金東宇)·오면직(吳冕稙) 등과 함께 남경을 탈출, 상해로 잠입하여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재건파와 제휴하고 새로운 혁명단체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비밀결사 맹혈단(猛血團)을 결성하여 한국독립당 재건파와 연합을 시도하는 한편, 한국인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37년 4월 16일 황해도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제8권 50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69 58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61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1집 822∼83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75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60·384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6권 1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