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충남 청양(淸陽) 사람이다. 1920년 3월 이민식(李敏軾)은 중국 상해로 건너가 여운형(呂運亨) 등을 만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내후원조직 결성에 관해 논의하고 임시정부 내무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통제(聯通制)와 교통사무국(交通事務局)의 임무수행단체를 조직할 것을 권유받았다. 그 후 국내로 다시 잠입한 이민식은 독립운동에 투신할 한인 청년들을 모집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사주비단을 조직하기로 계획한 뒤, 동년 6월경 서울 연지동 경신학교(儆新學校) 교정에서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하고 국권회복과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정 후원을 목적으로 내세웠다. 이후 동단 단원으로 가입한 그는 동년 음력 10월경 동단 사령장(司令長) 이민식으로부터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공채증권(獨立公債證券)을 매각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라는 권유를 받고 흔쾌히 찬동하였다. 독립공채증권을 교부받은 그는 같은 달 20일경 제동(濟洞)에 있는 윤용구의 집으로 가서 동인에게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공채를 매입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김애한(金靄漢)으로부터 공채를 교부받아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22년 4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서(1921. 12. 22 경성지방법원)
- 판결문(1922. 4. 13 경성지방법원)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20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1105·11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