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석항은 서울 출신으로 1905년 8월 서울에서 김일제(金一濟),기산도(奇山度),박경하(朴敬夏) 등과 함께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고 옥중 순국하였다.
을사늑약 이후 전,현직 고관들은 을사늑약 반대 상소운동을 벌였고, 각계각층에서는 을사오적을 처단하고 일제침략자를 처단하려는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이때 기산도는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근택(李根澤)의 부친 이민승(李敏承) 처단거사에 행동대장으로 가담하였다. 그런데 기산도의 이민승처단거사를 기획하고 총괄한 인물이 김석항이었다.
김석항은 일제의 황무지개척권요구반대운동을 펼쳤고, 국권의 쇠약과 민생의 곤란을 목도하고 정부와 외국공사관에 항일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문에 조인한 5대신을 매국역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처단할 것을 계획하였다. 우선 김석항은 이종대(李鍾大)의 집에서 기산도를 만나 이민승을 제거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11월 18일 김석항 등은 결사대를 조직하고, 11월 23일 밤 기산도 외 7명은 이민승처단거사를 실행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어서 1906년 2월 16일 밤 군부대신 이근택을 습격하여 10여 군데 중상을 입혔다. 일제 경찰은 이들을 검거하고자 날뛰었다. 이일로 2월 18일 김석항과 기산도를 비롯한 12명이 체포되어 1906년 5월 1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재판을 받았다. 기산도는 2년 6월의 징역형을 받았고, 김석항은 3년의 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07년 7월 3일 옥중에서 병으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理院:1906. 5. 13)
- 大韓自强會月報 第13號(1909. 7. 25)
- 騎驢隨筆(宋相燾) 83면
- 梅泉野錄(黃玹) 第5卷 光武 10年 丙午(190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147~1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