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황해도 봉산(鳳山) 사람이다. 1920년 6월 6일 황해도 봉산에서 김청풍(金淸風) 등과 더불어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을 조직하고 교통원으로 선임되어 첫째,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할 것, 둘째,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한인 경찰관리와 밀정을 처단할 것, 셋째, 군자금 거부자와 밀고자를 처단할 것, 넷째, 국내 독립운동 상황을 임시정부에 보고할 것, 다섯째, 임시정부로부터 송부되어 온 독립운동 관련 인쇄물을 국민들에게 배포하여 민족독립정신을 고취시킬 것 등을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동년 7월 김청풍 등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한 그는 임시정부로부터 우송되어 온 「독립신문(獨立新聞)」 4천 매와 『신한청년(新韓靑年)』 40여 부를 비밀리에 지참하고 서울로 가서 정의도·이원직 등에게 교부하는 한편, 사리원 지역 민가에도 배포하여 일반 민중들로 하여금 항일투쟁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21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한 뒤 1931년 11월 광동(廣東)으로부터 상해로 건너간 그는 안창호(安昌浩)를 만나 중국측과 논의한 대일전선통일동맹계획안(對日戰線統一同盟計劃案)을 협의·작성하여 항일투쟁 준비계획을 실행하는 등 항일국권회복운동을 위해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7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87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7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10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