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4년 평북 선천군(宣川郡)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제2중대 소위(少尉) 이진무(李晋武)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고, 삼봉주재소(三峰駐在所)를 공격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4년 9월 26일 대한통의부원 김기보(金基甫)의 소개를 받아, 10월 6일경 자신이 거주하는 평북 정주군(定州郡) 옥천면(玉泉面)에서 이진무를 만나 동부(同府)의 대원이 되었다.
1924년 10월 25일 오후 8시경 이진무 등과 평북 선천군 동면(東面) 일봉동(日峰洞)에 소재한 금광제련소(金鑛製鍊所)를 공격하여 일본인 관리인이 소지한 총기를 습득하였다. 그리고 숙직실에 있던 허경윤(許京潤)과 동리에 거주하는 김세권(金世權)ㆍ최중식(崔重植)ㆍ박희정(朴熙禎)ㆍ김치로(金致魯)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4년 12월 1일경 이진무와 함께 노원근(盧元根)의 집에서, 선천경찰서(宣川警察署) 삼봉주재소를 공격하여 무기를 획득하기로 결정하였다. 17일 다시 노원근과 협의를 한 후, 주재소 안에 있는 순사의 수효와 무기 둔 곳 등을 탐지하였다. 18일 주재소로 향하는 도중 선천군 신부면(新府面) 청강동(淸江洞)에 거주하는 삼봉주재소 장 순사의 사택에서 기총(騎銃) 1정, 실포(實包) 15발이 들어 있는 탄약합(彈藥盒) 1개 등을 확보하였다. 19일 오전 0시 20분경 삼봉주재소에 이르러 순사 산본(山本)을 총살하고 총기를 획득했다. 이들은 1925년 1월 초순경까지 노원근ㆍ김문학(金文學)ㆍ방원국(方元國) 등의 집에서 유숙하며 각처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거사 후 일본 도쿄(東京)로 피신하였으나 은신처가 발각되었고, 1925년 5월 3일 권총을 발사하며 대항하였으나 체포되었다. 1925년 11월 1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살인미수ㆍ주거침입ㆍ강도ㆍ강도방조ㆍ강도상인방조ㆍ방화ㆍ범인장익(犯人藏匿)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재판장을 향하여 "무기가 아니라 사형도 좋다"고 외치며 만세를 부르는 의기를 보였다. 1926년 2월 2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 : 1926. 4. 19)
- 判決文(平壤覆審法院 : 1926. 2. 20)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關係書類
- 朝鮮日報(1924. 12. 20)
- 東亞日報(1925. 5. 10, 9. 13, 11. 18, 11. 21)
- 時代日報(1925. 11. 1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949~9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