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북 충주(忠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후, 이병철(李秉澈)·조용주(趙鏞周)·연병호(延秉昊)·송세호(宋世浩) 등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각종 인쇄물을 배포하여 민족정신을 앙양하고 세계 각국에 한국의 실정을 알려 조국의 광복을 쟁취할 목적으로 동년 6월 서울에서 청년외교단(靑年外交團)을 조직하였는데 그는 특별단원으로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그러나 동년 11월 애국부인회가 일경에 탐지됨과 동시에 청년외교단도 노출되어 이병철·안재홍(安在鴻)·김홍식(金鴻植)·김연우(金演祐) 등의 단원들이 체포되었다. 그는 다행히 상해로 피신하였으나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의 궐석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상해에서 그는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해사부 참사(海事部 參事)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는데, 임시의정원 의원인 조덕진(趙德津)·김진우(金鎭宇) 등과 독립운동자금의 조달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이 합치되었다. 그리하여 1921년 2월 군자금 모집의 사명을 띠고 다시 입국하여 활동하던 중 1921년 7월 서울 사직동(社稷洞)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만주로 건너 가 활동하였다고 하며, 1927년 2월 6일에는 만주 봉황성(鳳凰城)에서 교민들이 봉성농우회(鳳城農友會)를 조직하자, 박 광(朴洸)·강한조(姜漢朝)·조익수(趙益秀)·김정한(金正漢) 등과 위원에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4면
- 고등경찰요사 191·193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39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22면
- 판결문(1920. 6. 29 대구지방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0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506·5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