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1운동 후 누차 수금 (囚禁) 됨 (한국독립운동사 (韓國獨立運動史) p.476)
2.전덕원 (全德元) (종형 (從兄) )을 찾아 남만 (南滿) 으로 망명, 독립단에 가입활약 (항일순국의열사전 (抗日殉國義烈士傳) p.342, 한국독립운동사 (韓國獨立運動史) p.267, 476)
3.남만 (南滿) 각 단체 통일후원대장으로 1926년 고마령군사회의 (古馬領軍事會議) 에 참석하였다가 일경 (日警) 에게 피습되어 최석순 (崔碩淳) 등 29인과 전사 (戰死)
(한국독립운동사 (韓國獨立運動史) p.267, 476)
(항일순국의열사전 (抗日殉國義烈士傳)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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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용천(龍川) 사람으로 대한통의부 재무부장이던 전덕원(全德元)의 사촌동생이다.
1919년 독립단과의 연락 및 폭탄 밀수입 관계로 12개 경찰서에서 악형을 당한 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6월에는 남만통일후원회(南滿統一後援會)를 조직하고 각 단체와의 타협을 추진 중, 토병(土兵)에게 체포되어 관전현(寬甸縣)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1923년에는 백광운(白狂雲)·최석순(崔碩淳)·최지풍(崔志豊)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제2중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25년 3월 16일 즙안현 고마령(輯安縣古馬嶺)에서 국내 진입을 위한 작전회의를 하고 있던 중 일제 경찰의 기습을 받고 중대장 최석순(崔碩淳)을 비롯하여 전창희(田昌禧)·최항신(崔恒信)·안정길(安貞吉)·김용무(金用武)·김학송(金鶴松)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54·267·289·475·476·48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462·48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