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후에 평남 안주(安州)에서 장진환(張珍煥)·성당률(成唐律)·신영업(申榮業) 등과 함께 한족회(韓族會)의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10월(음) 관전현(寬甸縣)의 대한청년단연합회에서 파견된 장성욱(張成郁)으로부터 안주(安州)에 지단(支團)을 조직할 것을 위임받고 동지를 규합하다가 1921년 일경에게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후 김 련(金鍊)·김우천(金祐天) 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였으며, 수차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1928년 5월에는 서울에 근거를 두고 적기관의 파괴와 군자금 마련을 위해 폭탄제조 및 지폐위조 등을 추진하다가 김성만(金成萬)·백순화(白順和)·현기봉(玄基鳳)·김 연(金鍊)·김우천(金祐天) 등과 함께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28년 8월에는 동아일보 영변지국 구장(球場) 분국장을 지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5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52면
- 동아일보(1921. 4. 17, 1928. 6. 16)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