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항해도 재령(載寧) 사람이다.
1920년 4월 김성수(金性洙)·이상협(李相協) 등과 함께 동아일보(東亞日報)의 창간에 참여하여 발기위원 겸 논설위원으로 있다가 특파원으로 중국 북경(北京)에 건너가 미국의원단(議員團)의 중국방문을 취재하는 한편 그들에게 한국의 독립요구를 알리는데 힘썼다.
1920년 10월 2일 일본군이 소위 혼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한 다음 이것을 구실로 만주의 한국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5개 사단에서 차출한 대병력으로 만주에 침입해서 독립군을 공격할 뿐 아니라 한국 이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하자, 동아일보의 조사부장과 통신부장을 겸하고 있던 그는 「신문은 정간 중에 있지만 기자의 활동은 중지할 수 없다」하고 주위에서 위험함을 들어 만류하는 것을 다수의 동포들이 학살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뿌리치고 일본군의 한국인 학살의 진상을 취재하기 위하여 10월 15일 서울을 출발해서 11월 6일 간도에 도착하였다.
간도 용정(龍井)에 이르러 여관에 여장을 풀고 그곳 일본군사령부를 찾아가 한국인 학살의 진상을 추궁하고 힐책한 즉 일본군측에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하며 후일에 함께 가보자고 약속하는 고로 여관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중에 일본군측에서 군인을 보내어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신문(獨立新聞)」1921년 10월 28일자에 「장덕준씨 조난논평(張德俊氏 遭難論評)」이라는 제하에 「적의 만행을 힐책한 일로 밤중에 유출(誘出)하여 암살(暗殺)함」이라는 부제를 부치고 최근 간도로부터 돌아온 동포 유지의 말을 인용하여 그가 일본군에게 암살당한 것이 확실하다고 확인하여 보도하였다.
그 요지는 일본군이 장암동(獐岩洞)에서 30여호의 한국인 주민을 한곳에 모아 방화하고 몰살한 만행을 자행했는데 그가 이 사건에 대하여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일본군사령부를 찾아가 만행을 힐책한 즉 후에 함께 조사해 보자고 응답하고는 그 날밤에 여관에서 억지로 불러내다가 암살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동포의 학살에 항의하여 진상을 밝히려다가 한국 최초로 순국한 기자가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3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40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139·140·141·14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110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8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7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