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19년 8월 7일에 조직한
3. 1922년
4. 1924년
5. 1924년 3월 6일 하르빈에서 왜형사
6. 1925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북 회령(會寧) 사람이다.
1907년 1월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김동필(金東弼) 등과 함께 을사5적을 처단할 것을 계획하고, 강원상(康元相) 등과 함께 군부대신인 권중현((權重顯)을 사살하고자 하였으나 부상을 입히는데 그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동원당(東園黨)을 조직하였으며, 1918년에는 정 신(鄭信)외 1명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정의단(正義團)을 조직하고 간도 각지에 30여개소의 지부를 설치하는 동시에 일민보(一民報)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19년 8월 임시정부와 연결되어 서 일(徐一)·현천묵(玄天默)·김좌진(金佐鎭)·계 화(桂和) 등과 함께 군정부(뒤에 北路軍政署로 개칭)를 조직하자, 제4중대장 및 모연대장에 임명되어 활약하였으며, 사관연성소를 설치하고, 국내에 파견되어 회령·무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기관을 습격 파괴하였다.
1921년 9월경에는 부하들을 간도지역에 파견하여 태평양회의에서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조국의 광복을 이룰 수 있다는 홍보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1923년에는 김승학(金承學)·이유필(李裕弼)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였으며, 1924년 4월에 강기성(姜基成)과 함께 하얼빈도외17도구(哈爾濱道外十七道溝)에서 밀정처단 및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다가 강기성(姜基成)과 함께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5년 4월 24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위반, 폭발물 취체규칙위반으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는데 이후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396면
- 고등경찰요사 114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79면
- 동아일보(1924. 4. 14, 1925. 4. 24)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151·152·153·15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364·369·426·4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3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904·969·101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98·310·51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72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541·542·5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