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출신이며, 천도교(天道敎)인이다.
1898년(광무 2) 최초의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帝國新聞)을 창간하였으며, 대한황성신문(大韓皇城新聞) 사장에 피임되었으나, 고종황제(高宗皇帝)의 탄신일(7월 25일) 경축기사에 성수만세(聖壽萬歲)가 성수망세(聖壽亡歲)로 오기되어 불경죄로 투옥되었으나 중상모략으로 판명되어 석방되었다. 1906년(광무 10)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 월보과장(月報課長)과 보성 인쇄주식회사(普成印刷株式會社) 사장직을 맡아보았다. 독립운동의 기운이 감돌던 1919년 2월, 오세창(吳世昌)으로부터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자신도 이 계획에 참여하여 민족대표로 서명하기로 결심하였다. 2월 27일 그가 사장으로 있던 수송동(壽松洞)의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공장 감독 김홍규(金弘奎)에게 명하여, 최남선(崔南善)이 경영하던 신문관(新文館)의 직공이 짜서 최 린(崔麟)의 집에 보관중이던 독립선언서 활자판을 가져오게 하여 이를 인쇄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홍규는 인쇄직공 신영구(申永求)에게 인쇄하도록 하여 그날 밤 11시까지 2만 1천 매를 인쇄하여 이튿날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독립선언서 중에서 2천 매를 28일 보성사 간사인 인종익(印宗益)에게 주어, 그중 1천 5백 매는 전주(全州) 천도교구에 보내고, 나머지는 충주(忠州)로 보내어 밤중에 살포하도록 하였다. 또한 독립선언의 취지를 국내에 보도하고, 조선인에 의한 계속적인 독립운동의 전개를 위한 독립운동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천도교 대도주 박인호(朴寅浩)·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장(普成法律商業專門學校長) 윤익선(尹益善)과 더불어 독립신문을 발간하기로 협의하였다. 이에 송현동(松峴洞)에 있는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손병희(孫秉熙)와 함께 민족대표로 서명한 독립선언서 전말을 기재하고,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한 원고를 작성하여 윤익선의 명의로 발간하기로 했다. 또 3월 1일 자신이 경영하는 보성사에서 김홍규로 하여금 독립신문을 인쇄케 하여 임준식(林準植)에게 배포하도록 하였다. 이날 오후 2시 인사동(仁寺洞) 태화관(泰華館)에 손병희 등과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자신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약 100매를 탁상에 놓고, 이 자리에 모인 민족대표에게 회람케 한 후, 함께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3년에 걸쳐 ≪한국독립비사(韓國獨立秘史)≫를 집필하여 발간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독립운동년감 2면
- 고등경찰요사 17·22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1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307·309·427·813·814·816·818·821-82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33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70·72·76·91·286·68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49·662·663·66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75·201·2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14·20-23·26·28·30·38·41-46·5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75·201·20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03·147·148·45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