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북 고창(高敞) 사람이다.
그는 1919년 5월 고창군내 신창학교(新昌學校)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 단원 김영식(金永植)으로부터 군자금 수합의 취지를 듣고 이에 찬동하여 힘을 모았다. 그리하여 그는 동향의 부호 강대직(姜大直)을 상대로 자금수합 활동을 펴는 한편 동년 8월에는 상경(上京)하여 동단에 정식 가입하고 외교원(外交員)으로 활약했다. 동단에서 외교원의 임무는 주로 지방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수합하는 일과 동지를 포섭하는 것이었다.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이 주도·결성한 대한독립애국단은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지단을 설치하던 임시정부 지원단체였다. 이러한 동단의 활동은 임시정부의 선전과 재정 자금의 조달, 그리고 국내의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희영(柳熙永)·김대형(金大衡) 등을 단원으로 가입케 하며 조직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1920년 1월 동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붙잡혔으나, 동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0. 12. 23 경성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5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92·999·1003·1004·102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