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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15년 음력 1월 15일 윤상태(尹相泰)·서상일(徐相日) 등과 함께 경북 달성군(達城郡) 안일암(安逸庵)에서 시회(詩會)를 가장하여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중앙총부(朝鮮國權恢復團中央總部)를 조직하였다.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는 대구(大邱)를 중심으로 주로 경상우도(慶尙右道) 지방의 중산층 이상의 혁신유림들이 참여하여 곡물상의 상업조직과 사립교육기관을 통해 독립군을 지원한 구국경제활동단체였다. 그는 동단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펴다가 일경에 붙잡혀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에는 경남지역에서 동지규합에 힘쓰던 중 붙잡혀 1년간 고초를 겪었다.
또한 1927년 3월 경남 도평의원(道評議員)인 김기정(金淇正)이 도평의회 석상에서 조선인 교육의 불필요 및 조선어의 통역철폐를 주장한 매국적 행동을 응징코자 개최된 김기정 징토시민대회로 인해 박봉삼(朴奉衫) 등 10여명의 애국지사들이 김기정의 고소로 인하여 동년 5월 일경에 붙잡혔다.
이에 분격한 황덕윤(黃德允)·황봉석(黃奉石)·이태원(李泰源) 등 35명의 인사들은 동년 5월 10일 모임을 갖고 구금인사들에 대한 금전모집, 변호사 선임, 석방운동을 위한 시민대회의 개최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일경에 의해 이같은 계획이 무산되자 동년 5월 13일 황덕윤·황봉석 등은 다시 구금인사들의 석방과 동포들의 호응을 촉구하는 격문 5백여매를 인쇄하여 시내 각처에 배포하였다.
이에 고무된 수천명의 군중들이 김기정의 집을 습격·파괴하는 한편 구속인사들의 석방과 면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때 그는 군중들을 주도하며 시위에 앞장서다가 일경에 붙잡혀 1928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820∼828면
- 고등경찰요사 18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