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남 진주(晋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후 형 박춘기(朴春機)가 만주로 망명하자, 가계를 돕기 위하여 진주금융조합에 사환으로 취직하여 성실히 근무하고 일인들의 신임을 얻었다.
1924년 6월경 고향사람인 장두관(張斗爟)을 통하여 형의 소식을 들었는데 형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데 군자금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방도가 있으면 협조하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평소 금융조합의 일인들에게 신용을 얻고 있던 그는 거금 6천원의 조합돈을 몰래 인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진주노동공제회(晋州勞働共濟會) 상무집행위원(常務執行委員)이던 김영호(金永浩)와 함께 만주로 탈출하기 위하여 일경의 감시를 피해 서울까지 도착하였으나 일경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형을 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출옥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청년동맹에 가입하여 계속 항일투쟁을 하다가 경도(京都)에서 병사하였다고 전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4. 8. 5, 8. 13,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