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함경남도 함흥(咸興)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에 전개된 함흥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3일 함흥장터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그 추진을 주도한 42인중 1인이다.
이들은 장터에서 군중을 모아놓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었다.
출옥 후에는 일제의 감시인물로 지목되어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도 기독교(基督敎) 목사로서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1943년 4월에는 전남 순천(順天) 기독교 박해 상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출장 중, 설교자료·강연자료 등을 압수당하고 기독교인의 비밀결사사건과 관련되어 1944년 2월 4일 광주(光州)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44. 2. 4 光州地方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2卷 69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5卷 1011·1012·1013·101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