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보성(宝城) 출신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운을 걱정하여 의병운동에 동조하고 있었다.
당대의 거유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창의포고문(倡義布告文)을 지어 각 고을로 통문을 돌렸다.
이에 백홍인은 송연제(宋淵齊)·송심석(宋心石)과 더불어 거병할 것을 결심하고 남방의 여러 고을을 다니면서 의병활동을 전개할 것을 권면하였다.
1906년 호남 각지에 팔도사민서포고문(八道士民書布告文)을 배포하다가 장흥(長興)의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어 5개월간 구금된 후 석방되었다.
은밀하게 동지를 규합해오던 면암이 안병찬(安炳瓚)과 손을 잡고 태인(泰仁)·순창(淳昌)을 거점으로 유림 인사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의병운동을 전개할 때 여기에 참여하였다. 면암 의진에 입진하여 적군과 약간의 교전을 하였다.
1910년 이른바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이에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고,
"2천만 동포가 왜놈들의 밥이 되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겠느냐"
고 하며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근고팔도사민서 (격문)
- 국민정신교육자료(전남교육연구원발행) 112·1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