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33년 5월에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구익균(具益均)의 지도를 받고 광주(廣州)로 가서 8월에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의 당원으로 입당하여 항일투쟁을 하였다.
1937년 2월에는 중국 중앙육군 군관학교 제12기 포병과에 재학하면서 3군 체육대회에서 1등상을 받는 등 활동으로 일제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며, 졸업한 후에는 중국군 소위로 임관되어 1938년에는 중국군 중위로 승진하고 귀주(貴州)에서 포병학교 교관으로 복무하였다.
1942년에는 연합군 사령부 제16연대 소교로서 많은 항일전에 참전하여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에는 일본군내의 한적 사병 접수 업무 및 광복군의 확군 문제와 일본군 무장 해제의 협조, 그리고 한국 교포들의 생명, 재산 보호를 위한 임시정부와 중국 정부간에 합의된 방침에 따라 광복군 총사령 이청천(李靑天)장군의 명령으로 광복군 각 지대에서 일본군 점령 지역에 군사 특파단을 파견하도록 하는 동시, 일군내 한적 사병을 접수하여 잠편지대(暫編支隊)를 주요 도시에 설치하게 되었다. 한적 사병의 인원을 약 10만 명으로 보고, 기설 3개 지대 외에 7개 잠편지대를 증설하여 도합 10개 지대로 확장하며 각 지대는 완전한 사단 편제로 조직한다는 계획이었다.
따라서 잠편지대는 1945년 10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 전방으로 각각 추진하게 되었는데 그는 광동(廣東) 잠편지대에 배속되어 최덕신(崔德新)을 지대장으로 하고 조일문(趙一文) 강인수(姜人壽) 이기동(李基東) 등과 함께 참모로 임명되어 광복군과 교포들의 귀국 안전을 담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5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