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남 울산(蔚山) 사람이다.
1905년 영남 유림의 을사조약 폐기상소에 연명으로 참가하였으며 1912년 이후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1923년 김창숙(金昌淑)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의 권유를 받고 정수기(鄭守基)와 함께 군자금 수합활동을 폈다.
한편 김창숙은 1925년 내몽고(內蒙古) 지방의 미간지 및 황무지 20만정보를 매입하여 남북만주의 동포들로 하여금 개간토록 한 후 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할 것을 계획하였다. 김창숙은 이에 필요한 자금으로 20만원의 모금계획을 세우고 송영호(宋永祜)·김화식(金華植)·이봉로(李鳳魯) 등과 함께 삼남(三南)지방을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곽종석문집(郭鍾錫文集)의 출판을 준비중이던 그는 이와 같은 계획에 뜻을 같이하여 경남의 울산·양산·동래 방면의 군자금 모집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모금한 금액이 예정했던 20만원에 미치지 못하자, 그는 1926년 3월 17일 경남 범어사(梵魚寺)에서 김창숙·정수기·이재락(李在洛) 등과 회합을 갖고 군자금 헌납에 불응하는 자와 소액 헌납자를 암살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의열단(義烈團)과 교섭하여 폭탄 및 권총을 입수하기로 하고 김창숙은 동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의열단의 김원봉(金元鳳)·유우근(柳友根)·한봉근(韓鳳根)과 구체적인 계획을 협의하였다.
그러던 중 손후익은 일경에 붙잡혀 1927년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7. 3. 29 대구지방법원)
- 기려수필 258∼264면
- 벽옹김창숙일대기 20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399·41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309·311·313·316·327면
- 고등경찰요사 284·28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