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문경(聞慶)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수학하였으며, 장성하여서는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비분함을 금치 못하던 터에 1907년 원주(原州)의 의병대장 민긍호(閔肯鎬)로부터 총기를 받아 신림(神林) 안강리(安康里)에서 의병을 모집하였다고 한다.
그후 제천(堤川)·영월·단양 등 10여 개의 군(郡)에서 적과 접전을 벌여 많은 공을 세웠으나 횡성(橫城)에서 교전 중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유탄에 적중되어 대퇴부 상단에 총상을 입었다고 한다.
1907년 8월(음) 의병장 운강 이강년(雲崗 李康秊) 의진에 입대하여 군사장(軍師將)에 임명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중과부적이라 1908년 귀향하여 이름을 권태준(權泰俊)이라 변성명하여 은신하였다.
1913년 2월 중순 의병 김재성(金在性)으로부터 고종황제의 밀서를 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군자금을 모금할 것을 계획하고 부하들로 하여금 그 일을 분장하도록 지시하였다.
1914년 10월부터 안동(安東)·제천(堤川) 등지에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군자금모집과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그간의 행적이 드러나 체포되었다.
1915년 6월 1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교사죄목으로 징역 15년형을 받았으며, 7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되어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음력 8월 1일 오랜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경성복심법원 판결문
- 매일신보 2920호(1915. 5. 13)
- 고등경찰요사 25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411면